한국은 지금도 여전히 창조과학이라 불리는 일련의 활동이 활발하다.
많은 교회들이 창조과학회를 초청하여 강연을 듣고 하나님의 존재와 창조의 이야기를 확증하려고 한다.
진화론에 대한 반응으로 진화론을 부정하기 위해서 창조론을 이야기한다.
과학교과서에는 창조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지 않는다.
진화에 대한 언급만 있다. 오래전 미국의 한 주에서 창조론도 과학 교과서에 실어야 한다고
소송을 한적이 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패소하였다. 진화론만 교과에서 실어야 한다고...
기독교 국가라 불리는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대통령이 선서할때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하는 나라..미국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특히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창조론이든 진화론이든..그것을 왜 증명해야 하는가?
창조론의 이야기로 하나님을 증명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진화론을 이야기하니 창조론을 이야기하고..그것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과학의 허구를 지적하려 한다.

난 이부분에 대해서 반대한다.
난 진화론을 인정한다.
물론 창조론도 인정한다. 하나님께서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셨다.
그러나 창조진화론도 아니다.
과학도 종교도 여전히 불안전한 상태라고 나는 여긴다.
터지기 일보 직전의 활화산 같은 ....
과학은 끊임없는 가설의 등장과 반복적 실험으로 얻은 결과를 통해 인정하는 정설..
그리고 또 다시 깨어지는 정설은 새로운 가설을 만난다.
토머스 쿤은 이런 과정을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이야기했다.
이전 가설은 새로운 가설과 함께 존재할 수 없다. 패러다임은 변화한다.

부족한 인간의 힘으로 판명하는 내용을 가지고 하나님을 정의하려고 하는 일은 무모한 일이다.
하나님께서 첫찌날은 무엇을 창조하시고 둘째날은 무엇을 창조하셨는가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은 그 내용으로도 모순되어 있는 부분이 있다. 그렇다고 이것이 창조를 부정하는데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창세기 1장의 창조 순서가 무엇이 중요하다 말인가? 이것이다.
이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신앙의 고백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는 것, 그것이 문제인것이다.
이것이 과거 기독교가 세상에 폭력적으로 행한 많은 일들을 촉발시킨 것이다.
그리고 과학을 종교으 영역에서 밀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과학을 옹호하면 무신론자가 되는 것으로 잘못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과학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폭력적 자연 지배를 정당화 하기도 한다.
하나님을 닮은 최고의 창조물이라는 이유로..
그러나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면서 보시기에 좋았던 이들은 모두이다.

종교와 과학 만날 수 없는 원수인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한국 기독 사회는 지나친 이분법에 빠져있다. 그것이 종교를 유지하는 힘인냥 잘 못생각한다
오히려 그것이 종교의 미래를 불안하게 하는 일인 것은 모르고..
하나님을 어느 한계점 안으로 몰아넣으려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이것은 정리되지 않은 나의 생각이다. 더 정리해야 겠지
그러나 창조과학을 이야기하는 많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양쪽의 책을 2권씩만 읽으라..그러면 좀더 생각할 여지를 갖게 될 것이다.
권하기는 도킨스의 책은 읽지 말기...그이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억지를 부리고 있다.
사실 그 모습에서 종교의 모습, 기독교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하나님을 가두지 말았으면 좋겠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이론으로 신학으로 과학으로 하나님을 가두려 한다.
열려계신 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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