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사는게 참 재미없어요. 

점점 재미없게 하는 것 같아요.. 


그걸 노리고 있는 듯하기도 하고요. 


도대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저렇게 행동하는지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드네요.. 


글을 쓰고 싶은데 글을 쓰고 싶지 않아요. 

글을 쓰고 싶은데 무슨 글을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문득 문득 버려진 이곳이 생각이 나네요.. 

무엇인가 하려고 만들어 놓은 곳일텐데...

이렇게 잊혀져 가다니..



'- > 꼬목사랑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은 없다.  (4) 2016.06.10
흔적을 남긴다는 것  (0) 2016.05.12
유라의 기억  (0) 2014.01.26
2월.. 그리고 21일  (0) 2013.02.22
가을이다.  (0) 2012.09.24
하나님은 없다....


적어도 이렇게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더이상 없다.

학생들을 이용하는 신학교 교수들에게 하나님은 없다.

교회 재정을 횡령하는 목사들에게 하나님은 없다.

교인들과 성 스캔들을 일으키고도 주의 종은 하나님께서 치리하시는 거지 사람들이 말하는거 아니라고 떠드는 목사들에게 하나님은 없다.

목사를 청빙하는 과정에서 거짓을 말하는 교회에 하나님은 없다.

자리만 옮겨가면 모든 문제가 덮힐 거라고 생각하는 목사들에게 하나님은 없다.

남의 설교를 버젓이 표절하고도 다른 교회로 옮겨가서 신실하척 목회하는 목사에게 하나님은 없다.

그것을 알고도 문제 있는 자기 교회 목사와 맞바꾼 그 교회와 장로들에게도 하나님은 없다.

돈 없고 빽 없는 목사들을 우롱하는 교회에 하나님은 없다.

돈과 아버지 장인 명예 권력은 있어도.... 하나님은 없다.

정말 싫다....
내가 그 사이에서 놀아나고 있는 거 같아서..
그걸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거 같아서
참 싫다.

우리 하나님 정말 힘드시겠다..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성경에 기록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였다. 그런데 너희는 그것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마21:13


'- > 꼬목사랑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는게 사는게 아니다.  (0) 2016.11.16
흔적을 남긴다는 것  (0) 2016.05.12
유라의 기억  (0) 2014.01.26
2월.. 그리고 21일  (0) 2013.02.22
가을이다.  (0) 2012.09.24

2009년 5월 23일은
2001년부터 생활한 춘천을 떠나는 날이다. 

아침부터 번잡하게 이삿짐을 싸는날

한국생활을 정리하고 프랑스로 떠나기 위해서 짐을 싸는 날...

이삿짐을 정리하기 위해서 복잡한 박스들 사이에서 

강화로 갈 짐과 프랑스로 갈 짐과 산본 처가집으로 갈 짐을 정리하며 추억에 빠지던 순간

아침 먹는 밥상을 막 마주할 때즈음
뉴스에서 들리는 엄청난 소식 말로 할 수 없는 충격을 받은 소식..

믿을 수 없는 소식
노통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

그렇다! 노통은 부엉이 바위에서 그렇게 몸을 던졌다. 

퇴임 후 그렇게 괴롭힘을 당했다. 온 나라의 정치인들이, 언론들이 노무현을 비난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듯이  사사건건 문제를 삼고 시비를 걸었다. 

검찰 조사까지 받고 버스를 대절해서 불러 올리고 헬기가  따르며 버스가는 길까지 중계하며 조롱했다.

국민을 처참하게 도륙하게 한 대통령은 보란 듯이 살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러던 중 

그가 한줄 글을 남기고 떠났다. 
정치인으로서 잘한 것만은 아니지만
인간 노무현으로서 우리에게 젊은이들에게 
삶 속에 정치를 바라보게 한 그가. 

믿지 못할 방법을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지금. 

2016년, 7년 여전히 그가 그립다. 
그의 자리를 채울 만한 사람이 나타나지 못하고 있다. 
그의 생각을 이기지 못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오늘 그를 만나러 왔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결국 그만큼 안타깝지 않아서인가?

충동적으로 시간을 냈다. 

예배를 마치고 친구도 볼겸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이곳에 왔다. 

그를 만나러.. 
그를 만난 후 다시 나의 삶의 생각들이 정리될까 ? 후회하는 삶이 아니라 생각하는 삶을 다시 시작할까? 

그저 다시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 

그를 만나러 왔다. ​

​<부엉이 바위에서 내려다본 노무현 생가>


​<못들어가게 막아논 부엉이 바위.. 사람들은 손 닿는 거리에 담배와 사탕 등을 올려 놓았다>



​<부엉이 바위 오르는 길>



​<노무현 묘소 앞에 앉아 울던 할머니 이 할머니 때문에 눈물이 터졌다. 동영상은 차마...>



<참배를 기다리던 묘소 앞.. 바닥들.. 시민들의 참여..>


​<노무현 생가>


<주차장에서 들어가는 길-이 날은 행사 관계로 멀리 공사장 공터에 주차를 했다. 평소엔 가까이.. >


'- > 노짱!마음에 뭍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년... 그리고 3년...  (0) 2012.05.23
2010년 5월 23일 그가 떠난지 1년...  (0) 2010.05.24
분향소 철거 기사...참 가슴아픔...  (0) 2009.05.30
사진들...  (0) 2009.05.30
노무현 미방송 cf  (0) 2009.05.30

삶의 흔적을 남기는 일은 두렵다. 


몇번이고 계정을 다시 살리고 다시 살려도 다시 또 멈춘다. 


이 블로그 다시 멈추겠지..


목사로 살아가는 삶, 그 삶에 흔적을 남기는 것이 부담스럽다. 


자녀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나의 흔적을 가장 많이 느끼는 사람은 아마도 자녀들이겠지?


내 아이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좋은 아빠로 기억할까? 


좋은 목사로 기억할까? 


사실 요즘은 별로 자신이 없다..


좋은 아빠도, 좋은 목사도....


어떤 기억을 남길 것인가? 


기억이 나의 삶의 전부일텐데...


우리 아이들의 기억이 내 삶의 전부일텐데..


지금 그 기억을 잘 전해주고 있나? 우리의 아이들의 기억에 난 어떻게 남을까? 




'- > 꼬목사랑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는게 사는게 아니다.  (0) 2016.11.16
하나님은 없다.  (4) 2016.06.10
유라의 기억  (0) 2014.01.26
2월.. 그리고 21일  (0) 2013.02.22
가을이다.  (0) 2012.09.24

어느날 유라가 말했다. "엄마 아빠 이름 바꿔주세요..."
"왜? 이름이 바꾸고 싶어? 무슨 이름으로 바꾸고 싶어..."

"응 유란이이로 이름을 바꾸고 싶어...."
"유란이...왜?"

"이름 끝에 ...이로 끝나잖아.." "유빈이처럼..."

"잉.."

"나도....이로 불리고 싶어.."

그래서 한동안 집에서 유란이로 불러줬다.. 그러나 우리는 아이를 설득했지...
"유라야. 네 이름이 얼마나 이쁜 이름인데... 엄마 아빠가 정말 열심히 생각해서 지은거야 얼마니 이쁜 이름인데..."
"싫어 난 유란이고 싶어..."

그런 유라를 간신히 설득했다..

"동생이 태어나면 유라처럼 받침이 없는 이름을 지어줄께..그래서 유라처럼 이름을 ...야로 끝나게 해 줄께...."

그리고 우린 이 일을 잊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셋째가 찾아왔다. 그리고 그 아이는 딸이다..
우린 셋째의 이름을 짓기 위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런 저런 이름을 이야기하자 아내가 이야기한다.

"여보, 유라 셋째 이름 받침업는 이름으로 지어준다고 한다음부터 그 이야기 안해.. "

"잉? 아...받침...응...."

세달이나 지난 일인데..그게 뭐...
그러나 유라는 기억하고 있었다...

"아빠 동생 이름은 유미로 하자..."

"응? 아빤 유진이 좋은데...."

"싫어 나랑 약속했잖아..."

아....

아이들이게는 절대로 허튼 소리를 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이 일을 통해서 다시 얻었다.

그래서 우리 셋째는 받침이 없는 이름이 되게 생겼다....



TistoryM에서 작성됨

'- > 꼬목사랑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은 없다.  (4) 2016.06.10
흔적을 남긴다는 것  (0) 2016.05.12
2월.. 그리고 21일  (0) 2013.02.22
가을이다.  (0) 2012.09.24
목사로 산다는 것..  (0) 2012.07.09

한국에 들어오면서 계획한 일 중에 하나가 부목사 사역입니다.

사실 담임목사 사역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역지가 없지요. 저 같은 사람에게까지 주어지는 일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아내와 저는 회복이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담임목사 사역보다는 부목사 사역을 찾아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문제가 되더군요. 부목사도 자리가 없더란 말입니다. 특히 저같이 나이가 어중간한 목사는요.

대부분의 교회는 35살 미만의 목사 혹은 37살 미만의 목사를 구하더라란 말입니다.


그리고 또 문제가 되는 것이 목사를 청빙하는 과정의 문제입니다.

부목사에게 목회 계획과 목회 비전을 제시하라는 것입니다.


부목사 청빙 공고의 대부분이 예의 없고 사무적인 이야기였습니다.

면접까지의 과정에서도 예의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목사도 목산데.. 아니 가만히 보니 담임목사를 청빙하는 서류에서도 그런 내용들이 보였습니다.


기왕에 하는 부목사 사역.. 좋은 교회에서 좋은 목사님과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건방지게 교회와 목사님을 골랐습니다.

그 기준이 뭘까요?


저는 직접 공고를 쓰는 담임목사님 그리고 자신의 목회 비전을 제시하시고 함께 하기를 요청하는 담임 목사님과 교회에

원서를 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력서를 낸 교회가 이제 앞으로 사역하게 될 약대감리교회입니다.

사실 그 전에 두번 이력서를 낸 적이 있습니다. 관계를 통해서 알음으로 낸 이력서였는데

안됐습니다. 관계를 통한 일에 대한 부정적인 경고를 받은 셈입니다.


이번에 직접 낸 이력서를 내기로 선택한 교회의 부목사 청빙 공고는 신선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그 내용을 적어서 자기 소개서를 썼습니다.


그리고 면접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면접을 하는 자리에서 담임목사님께 물었습니다.

목사님의 목회 과정에는 어떤 일이 있습니까? 지금하는 프로그램이 목표에 이르기 위한 과정입니까?

아니면 목회의 내용 자체입니까?

담임목사님은 성실히 대답해주셨습니다. 무시하셔도 될만한 이야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친절히 이야기해주셨습니다.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함께 사역하기로 하였습니다.


음하하. 어찌 보면 제가 담임목사님을 면접한 꼴이 되었습니다. 그럴리야 없겠지만요..


그래서 이제 꼬목사는 부목사가 되었습니다.

7월부터 교육 목사 꼬목사가 됩니다.

기대해 주십시오. 이 블로그의 내용도 풍성해지지 않을까 내심 기대합니다. ^^


7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 > 교회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회  (0) 2012.10.07
삼위일체/동정녀 탄생  (2) 2011.11.20
고난주간 어린이 묵상자료입니다.  (1) 2011.04.16
교회 비전과 사명 선언문  (2) 2010.06.14
사랑받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교회  (0) 2010.05.29

벌써.. 2월의 21일...


두달이 지나가고 있다.

지나간 일들에 하나님의 흔적을 발견하기를 기도한다.


주님,

주님,

그리고

주님.......


감사합니다.

'- > 꼬목사랑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흔적을 남긴다는 것  (0) 2016.05.12
유라의 기억  (0) 2014.01.26
가을이다.  (0) 2012.09.24
목사로 산다는 것..  (0) 2012.07.09
고백  (0) 2012.05.26

때밀이 수건/ 최승호

 

 

살이 얼마나 질긴지

때밀이수건에 먼저 구멍이 났다.

무명(無明)은 또 얼마나 질긴지

돌비누 같은 경(經)으로 문질러도

무명(無明)에 거품 일지 않는다.

주일(主日)이면

꿍쳐둔 속옷 같은 죄들을 안고

멋진 옷차림으로 간편한 세탁기 같은 교회에

속죄하러 몰려가는 양(羊)들.

세탁비를 받으라, 성직자여

때 밀어 달라고 밀려드는 게으른 양(羊)떼에게

말하라, 너희 때를 이젠 너희가 씻고

속옷도 좀 손수 빨아 입으라고.

제 몸 씻을 새 없는 성자(聖者)들이 불쌍하다.

그들의 때 묻은 성의(聖衣)는 누가 빠는지.

 

죽음이 우리들 때를 밀러 온다.

발빠지는 진흙 수렁 늪에서

해 저무는 줄 모르고 진탕 놀다온 탕아를

씻어 주는 밤의 어머니,

죽음이 눈썹 없이, 아무 말 없이

우리들 알몸을 기다리신다.

때 한 점 없을 때까지

몸이 뭉그러져도

말끔하게 때를 문지르고 또 문지르는 죽음,

죽음은 때를 미워해

청정한 중의 해골도 씻고 또 씻고

샅샅이 씻어 몸을 깨끗이 없애 버린다.

그렇다면 죽음의 눈엔 온몸이 다 때란 말인가?

 

- 시집 <얼음의 자서전> (세계사, 2005) 

'- > 유쾌한 깨달음/영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로 목사의 고백  (0) 2012.06.08
세번째 기도문  (0) 2012.02.08
두번째 기도문  (0) 2012.02.07
Praying in the Wesleyan Spirit 1  (0) 2012.02.05
기독교 위기다?  (0) 2009.10.28


(사진 설명: 흑백으로 표시된 부분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성이고 컬러 표시된 부분은 느헤미야가 재건한 성벽. 느헤미야가 성벽을 쌓을 때에 다윗 시대의 성안 쪽 마을 조차도 다 둘러 쌀 수 없었다.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은 그 만큼 급박했다.이 사진과 설명은 http://biblia.co.il/?p=357#comment-14 에서 빌려 왔습니다.)


주일을 준비하는 밤.

10월의 첫번째 주일을 준비하는 밤.

이스라엘에 있는 선배가 운영하고 있는 홈페이지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느헤이먀가 재건한 성벽 사진과 그 느낌을 적은 글이다.

느헤미야와 함께 돌아간 사람들이 성벽을 재건하고 그 후에 에스라가 율법책을 낭송하는 모습을 묘사하면서 감동적인 모습을 묘사하는 듯 하다가 글은 조금씩 과격해졌다. 충분히 감정적으로 읽을 수 있는 글이다.


800년 만에 지키는 그들의 초막절, 철저하게 하나님을 떠나 있던 그들.. 그리고 그 선배의 일갈.. 그놈들이나 나나.. 오십보백보... 쩝.. 뜨거웠던 열정(과거)을 말하지만, 뜨거운 열정(현재)을 말 할 수 없는 자신을 탓하고 있다.



이글과 자신을 보면서 나 또한 다른 생각이 든다.

난 지금 그 초막이라도 지키고 서 있는가? 나날이 경험하는 뜨거운 감격을 고백하는 목회자인가? 아니면 세월을 탓하고 시간을 탓하고 상황을 탓하고 있는가? 느헤미야가 결코 이룰 수 없을 것 같았던 52일만에 3만 6천평의 성벽.. 그러나 그들을 그 성벽을 세웠다.


파리에는 많은 교회들이 있다. 그 교회들을 비난하거나 책 잡고 싶은 마음은 없다. 

바르지 않음이 크다고 해서 인정받을 수 없다. 일반 사회에서도 안되는 일들이 교회들에서는 은혜라는 말로 포장되어 함부로 자행되고 있다. 믿음의 선배들이 애써 쌓아 놓은 성벽을 함부로 무너트리는 것이다.

지금 우리 세대만 잘 지나가면 그만인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 세대를 지나가야 하면서 다음 세대를 위한 성벽 돌 하나를 올려 놓을 의무가 있다.

 

나는 이만교회 목사이고, 그것도 작은 이민교회 목사이다. 정말 집도 절도 없는 목사다.

느헤미야의 성벽을 보면서 무너져버린 교회가 겹쳐진다.

느헤미야의 성벽을 보면서 지금 내 모습이 보인다. 급박하게 일으켜 세워야 할 나.


나는 오늘도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다. 우물거리고 있다. 정말로 묘비에 우물쭈물하다가 그럴 줄 알았다는 말이 기록될 것같은 느낌이다. 관계 때문에 말하지 못하고, 작아서 말하지 못하고, 미움 받기 싫어서 말하지 못하고 있는게 있다. 


사람들은 바름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되는 일을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성경적이고 바른 신학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저 내 생각에는...이라고 이야기한다.

자기 편리한 하나님을 만들고 재생산하고 또 합의한다.


소속이 애매한 교인들, 소속이 애매한 교회들, 정체가 애매한 교인들, 정체가 애매한 교회가 많다.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 교회 사이에서 괴변과 변명을 늘어놓는 수다장이들이 넘쳐난다. 

나라고 다를까?


이곳에 와서 뭔가 해야겠다고 준비하던 모든 일이 하나도 되지 않았다.

목회는 목사 혼자서 할 수 없음을 절실히 느끼고 새긴 시간들이다.


요즘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있다.

함께 하나님의 교회를 세울 사람 10명을 보내주세요.

교회 다니는 사람 말고 함께 교회를 이룰 사람 10명을 보내주세요. 

이것은 나를 향한 회개의 외침이고 나를 향한 다짐의 고백이다.


교회,

어머니 교회

상처입은 어머니를 언제까지 내버려 둘 것인가? 


내일 상처입은 어머니 교회를 만나러 간다.

그 전에 고요하게 마음 깊이 긴 호흡을 내 뿜어야겠다.


파리의 가을은 비와 함께 시작한다.

쨍하던 날씨가 우물주물 머뭇거리기 시작하면서 가을이 시작된다.

해가 짧아진다.

섬머타임이 있는 백야 현상이 드러나는 파리 그래서 밤 10시까지 날이 저물지 않는 파리..

그 파리가 이제 수줍은 듯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렇게 시작된 파리의 가을.. 그리고 겨울을 재촉하는 비...

한국에 살땐 주로 여름에 비를 맞이하고..

가을은 청명한 하늘과 맑은 바람.. 노오란 들판을 만났는데..

여기선 흐린 하늘.. 떨어지는 비.. 서늘한 바람이 맞이한다..


4년째 맞이하는 가을...

그 가을은 풍성하여 열매 맺는 가을이 아니라..

서늘하기만 한 가을..


가을이다.. 몸도 마음도 또 추워진다..

'- > 꼬목사랑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라의 기억  (0) 2014.01.26
2월.. 그리고 21일  (0) 2013.02.22
목사로 산다는 것..  (0) 2012.07.09
고백  (0) 2012.05.26
일상으로 돌아오다..  (1) 2011.06.08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