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설명: 흑백으로 표시된 부분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성이고 컬러 표시된 부분은 느헤미야가 재건한 성벽. 느헤미야가 성벽을 쌓을 때에 다윗 시대의 성안 쪽 마을 조차도 다 둘러 쌀 수 없었다.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은 그 만큼 급박했다.이 사진과 설명은 http://biblia.co.il/?p=357#comment-14 에서 빌려 왔습니다.)


주일을 준비하는 밤.

10월의 첫번째 주일을 준비하는 밤.

이스라엘에 있는 선배가 운영하고 있는 홈페이지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느헤이먀가 재건한 성벽 사진과 그 느낌을 적은 글이다.

느헤미야와 함께 돌아간 사람들이 성벽을 재건하고 그 후에 에스라가 율법책을 낭송하는 모습을 묘사하면서 감동적인 모습을 묘사하는 듯 하다가 글은 조금씩 과격해졌다. 충분히 감정적으로 읽을 수 있는 글이다.


800년 만에 지키는 그들의 초막절, 철저하게 하나님을 떠나 있던 그들.. 그리고 그 선배의 일갈.. 그놈들이나 나나.. 오십보백보... 쩝.. 뜨거웠던 열정(과거)을 말하지만, 뜨거운 열정(현재)을 말 할 수 없는 자신을 탓하고 있다.



이글과 자신을 보면서 나 또한 다른 생각이 든다.

난 지금 그 초막이라도 지키고 서 있는가? 나날이 경험하는 뜨거운 감격을 고백하는 목회자인가? 아니면 세월을 탓하고 시간을 탓하고 상황을 탓하고 있는가? 느헤미야가 결코 이룰 수 없을 것 같았던 52일만에 3만 6천평의 성벽.. 그러나 그들을 그 성벽을 세웠다.


파리에는 많은 교회들이 있다. 그 교회들을 비난하거나 책 잡고 싶은 마음은 없다. 

바르지 않음이 크다고 해서 인정받을 수 없다. 일반 사회에서도 안되는 일들이 교회들에서는 은혜라는 말로 포장되어 함부로 자행되고 있다. 믿음의 선배들이 애써 쌓아 놓은 성벽을 함부로 무너트리는 것이다.

지금 우리 세대만 잘 지나가면 그만인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 세대를 지나가야 하면서 다음 세대를 위한 성벽 돌 하나를 올려 놓을 의무가 있다.

 

나는 이만교회 목사이고, 그것도 작은 이민교회 목사이다. 정말 집도 절도 없는 목사다.

느헤미야의 성벽을 보면서 무너져버린 교회가 겹쳐진다.

느헤미야의 성벽을 보면서 지금 내 모습이 보인다. 급박하게 일으켜 세워야 할 나.


나는 오늘도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다. 우물거리고 있다. 정말로 묘비에 우물쭈물하다가 그럴 줄 알았다는 말이 기록될 것같은 느낌이다. 관계 때문에 말하지 못하고, 작아서 말하지 못하고, 미움 받기 싫어서 말하지 못하고 있는게 있다. 


사람들은 바름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되는 일을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성경적이고 바른 신학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저 내 생각에는...이라고 이야기한다.

자기 편리한 하나님을 만들고 재생산하고 또 합의한다.


소속이 애매한 교인들, 소속이 애매한 교회들, 정체가 애매한 교인들, 정체가 애매한 교회가 많다.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 교회 사이에서 괴변과 변명을 늘어놓는 수다장이들이 넘쳐난다. 

나라고 다를까?


이곳에 와서 뭔가 해야겠다고 준비하던 모든 일이 하나도 되지 않았다.

목회는 목사 혼자서 할 수 없음을 절실히 느끼고 새긴 시간들이다.


요즘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있다.

함께 하나님의 교회를 세울 사람 10명을 보내주세요.

교회 다니는 사람 말고 함께 교회를 이룰 사람 10명을 보내주세요. 

이것은 나를 향한 회개의 외침이고 나를 향한 다짐의 고백이다.


교회,

어머니 교회

상처입은 어머니를 언제까지 내버려 둘 것인가? 


내일 상처입은 어머니 교회를 만나러 간다.

그 전에 고요하게 마음 깊이 긴 호흡을 내 뿜어야겠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