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동정녀 탄생

기독교를 접하게 되면 많이 듣는 이야기 중에 대표적인 이야기들입니다.
저는 삼위일체를 믿습니다.
동정녀 탄생을 믿습니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내가 믿음을 가지고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삼위가 일체가 아니어도
동정녀 탄생이 아니어도
내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이 문제가 종종 어려움이 되는 경우를 봅니다.
이 비논리적인 이야기를 어떻게 믿으라는 것이냐?
그럼 신앙인들은 그것은 믿음으로만 고백되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성경에는 삼위는 일체다라는 말이 실제로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 각각 나오고 때로는 둘 혹은 셋이 한꺼번에 등장하기도 하지만,
셋은 하나다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어떤 공의회를 거쳐, 어떤 투표의 과정을 거쳐서 삼위일체를 우리의 신앙 표준으로 삼았다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믿는 믿음이 중요한 것이겠지요.
그러나 신앙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이것을 강요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동정녀의 탄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이야기를 먼저 설명하고 이를 믿는 믿음을 보이라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또한 이것이 믿음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이 본질적이지 않은 문제로 인해서 믿음을 받아 들이지 못한다면
과감하게 이 이야기는 내려 놓는 것이 맞습니다.
술과 담배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하는가? 하지 않는가? 이것이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아닌가? 라는 질문에 답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차후의 문제이겠지요.

이 문제로 인해서 기독교의 진리를 만나지 못한다면 그것이 슬픈 일입니다.

교리문제 이전에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 그리스도의 길을 만나는 일이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성령의 역사는 특별한 이적과 주어지는 어떤 큰 일이 아닙니다.
예수의 길을 가게 하기 위한, 방법이고 도구가 되는 것이 성령입니다.
성령을 단순히 은혜 내려주시는 분으로만 이해하면 안됩니다.
방언을 주시는 분으로만 생각해서는 더욱 안되겠지요.

이런 저런 생활의 문제과 믿음의 깊이의 문제는 신앙생활을 통해서
바르게 배워나가고 체험하고 경험하면서 깊게 고백되어져야 할 문제이지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처음부터 강요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즘 성경을 읽고 성경공부를 인도하면서 더욱 강력하게 드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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