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들어오면서 계획한 일 중에 하나가 부목사 사역입니다.

사실 담임목사 사역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역지가 없지요. 저 같은 사람에게까지 주어지는 일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아내와 저는 회복이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담임목사 사역보다는 부목사 사역을 찾아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문제가 되더군요. 부목사도 자리가 없더란 말입니다. 특히 저같이 나이가 어중간한 목사는요.

대부분의 교회는 35살 미만의 목사 혹은 37살 미만의 목사를 구하더라란 말입니다.


그리고 또 문제가 되는 것이 목사를 청빙하는 과정의 문제입니다.

부목사에게 목회 계획과 목회 비전을 제시하라는 것입니다.


부목사 청빙 공고의 대부분이 예의 없고 사무적인 이야기였습니다.

면접까지의 과정에서도 예의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목사도 목산데.. 아니 가만히 보니 담임목사를 청빙하는 서류에서도 그런 내용들이 보였습니다.


기왕에 하는 부목사 사역.. 좋은 교회에서 좋은 목사님과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건방지게 교회와 목사님을 골랐습니다.

그 기준이 뭘까요?


저는 직접 공고를 쓰는 담임목사님 그리고 자신의 목회 비전을 제시하시고 함께 하기를 요청하는 담임 목사님과 교회에

원서를 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력서를 낸 교회가 이제 앞으로 사역하게 될 약대감리교회입니다.

사실 그 전에 두번 이력서를 낸 적이 있습니다. 관계를 통해서 알음으로 낸 이력서였는데

안됐습니다. 관계를 통한 일에 대한 부정적인 경고를 받은 셈입니다.


이번에 직접 낸 이력서를 내기로 선택한 교회의 부목사 청빙 공고는 신선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그 내용을 적어서 자기 소개서를 썼습니다.


그리고 면접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면접을 하는 자리에서 담임목사님께 물었습니다.

목사님의 목회 과정에는 어떤 일이 있습니까? 지금하는 프로그램이 목표에 이르기 위한 과정입니까?

아니면 목회의 내용 자체입니까?

담임목사님은 성실히 대답해주셨습니다. 무시하셔도 될만한 이야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친절히 이야기해주셨습니다.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함께 사역하기로 하였습니다.


음하하. 어찌 보면 제가 담임목사님을 면접한 꼴이 되었습니다. 그럴리야 없겠지만요..


그래서 이제 꼬목사는 부목사가 되었습니다.

7월부터 교육 목사 꼬목사가 됩니다.

기대해 주십시오. 이 블로그의 내용도 풍성해지지 않을까 내심 기대합니다. ^^


7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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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흑백으로 표시된 부분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성이고 컬러 표시된 부분은 느헤미야가 재건한 성벽. 느헤미야가 성벽을 쌓을 때에 다윗 시대의 성안 쪽 마을 조차도 다 둘러 쌀 수 없었다.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은 그 만큼 급박했다.이 사진과 설명은 http://biblia.co.il/?p=357#comment-14 에서 빌려 왔습니다.)


주일을 준비하는 밤.

10월의 첫번째 주일을 준비하는 밤.

이스라엘에 있는 선배가 운영하고 있는 홈페이지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느헤이먀가 재건한 성벽 사진과 그 느낌을 적은 글이다.

느헤미야와 함께 돌아간 사람들이 성벽을 재건하고 그 후에 에스라가 율법책을 낭송하는 모습을 묘사하면서 감동적인 모습을 묘사하는 듯 하다가 글은 조금씩 과격해졌다. 충분히 감정적으로 읽을 수 있는 글이다.


800년 만에 지키는 그들의 초막절, 철저하게 하나님을 떠나 있던 그들.. 그리고 그 선배의 일갈.. 그놈들이나 나나.. 오십보백보... 쩝.. 뜨거웠던 열정(과거)을 말하지만, 뜨거운 열정(현재)을 말 할 수 없는 자신을 탓하고 있다.



이글과 자신을 보면서 나 또한 다른 생각이 든다.

난 지금 그 초막이라도 지키고 서 있는가? 나날이 경험하는 뜨거운 감격을 고백하는 목회자인가? 아니면 세월을 탓하고 시간을 탓하고 상황을 탓하고 있는가? 느헤미야가 결코 이룰 수 없을 것 같았던 52일만에 3만 6천평의 성벽.. 그러나 그들을 그 성벽을 세웠다.


파리에는 많은 교회들이 있다. 그 교회들을 비난하거나 책 잡고 싶은 마음은 없다. 

바르지 않음이 크다고 해서 인정받을 수 없다. 일반 사회에서도 안되는 일들이 교회들에서는 은혜라는 말로 포장되어 함부로 자행되고 있다. 믿음의 선배들이 애써 쌓아 놓은 성벽을 함부로 무너트리는 것이다.

지금 우리 세대만 잘 지나가면 그만인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 세대를 지나가야 하면서 다음 세대를 위한 성벽 돌 하나를 올려 놓을 의무가 있다.

 

나는 이만교회 목사이고, 그것도 작은 이민교회 목사이다. 정말 집도 절도 없는 목사다.

느헤미야의 성벽을 보면서 무너져버린 교회가 겹쳐진다.

느헤미야의 성벽을 보면서 지금 내 모습이 보인다. 급박하게 일으켜 세워야 할 나.


나는 오늘도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다. 우물거리고 있다. 정말로 묘비에 우물쭈물하다가 그럴 줄 알았다는 말이 기록될 것같은 느낌이다. 관계 때문에 말하지 못하고, 작아서 말하지 못하고, 미움 받기 싫어서 말하지 못하고 있는게 있다. 


사람들은 바름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되는 일을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성경적이고 바른 신학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저 내 생각에는...이라고 이야기한다.

자기 편리한 하나님을 만들고 재생산하고 또 합의한다.


소속이 애매한 교인들, 소속이 애매한 교회들, 정체가 애매한 교인들, 정체가 애매한 교회가 많다.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 교회 사이에서 괴변과 변명을 늘어놓는 수다장이들이 넘쳐난다. 

나라고 다를까?


이곳에 와서 뭔가 해야겠다고 준비하던 모든 일이 하나도 되지 않았다.

목회는 목사 혼자서 할 수 없음을 절실히 느끼고 새긴 시간들이다.


요즘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있다.

함께 하나님의 교회를 세울 사람 10명을 보내주세요.

교회 다니는 사람 말고 함께 교회를 이룰 사람 10명을 보내주세요. 

이것은 나를 향한 회개의 외침이고 나를 향한 다짐의 고백이다.


교회,

어머니 교회

상처입은 어머니를 언제까지 내버려 둘 것인가? 


내일 상처입은 어머니 교회를 만나러 간다.

그 전에 고요하게 마음 깊이 긴 호흡을 내 뿜어야겠다.



삼위일체
동정녀 탄생

기독교를 접하게 되면 많이 듣는 이야기 중에 대표적인 이야기들입니다.
저는 삼위일체를 믿습니다.
동정녀 탄생을 믿습니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내가 믿음을 가지고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삼위가 일체가 아니어도
동정녀 탄생이 아니어도
내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이 문제가 종종 어려움이 되는 경우를 봅니다.
이 비논리적인 이야기를 어떻게 믿으라는 것이냐?
그럼 신앙인들은 그것은 믿음으로만 고백되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성경에는 삼위는 일체다라는 말이 실제로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 각각 나오고 때로는 둘 혹은 셋이 한꺼번에 등장하기도 하지만,
셋은 하나다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어떤 공의회를 거쳐, 어떤 투표의 과정을 거쳐서 삼위일체를 우리의 신앙 표준으로 삼았다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믿는 믿음이 중요한 것이겠지요.
그러나 신앙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이것을 강요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동정녀의 탄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이야기를 먼저 설명하고 이를 믿는 믿음을 보이라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또한 이것이 믿음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이 본질적이지 않은 문제로 인해서 믿음을 받아 들이지 못한다면
과감하게 이 이야기는 내려 놓는 것이 맞습니다.
술과 담배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하는가? 하지 않는가? 이것이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아닌가? 라는 질문에 답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차후의 문제이겠지요.

이 문제로 인해서 기독교의 진리를 만나지 못한다면 그것이 슬픈 일입니다.

교리문제 이전에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 그리스도의 길을 만나는 일이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성령의 역사는 특별한 이적과 주어지는 어떤 큰 일이 아닙니다.
예수의 길을 가게 하기 위한, 방법이고 도구가 되는 것이 성령입니다.
성령을 단순히 은혜 내려주시는 분으로만 이해하면 안됩니다.
방언을 주시는 분으로만 생각해서는 더욱 안되겠지요.

이런 저런 생활의 문제과 믿음의 깊이의 문제는 신앙생활을 통해서
바르게 배워나가고 체험하고 경험하면서 깊게 고백되어져야 할 문제이지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처음부터 강요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즘 성경을 읽고 성경공부를 인도하면서 더욱 강력하게 드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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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을 맞아 어린이 묵상자료집을 만들었습니다.
수고해주신 국윤경 전도사님(제 아내입니다.)께 감사드립니다. ^^

필요하신 분들은 파일을 다운 받아 사용하세요.
자료의 편집과 사용에 제한이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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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날 동안 이 일을 해야 하는가 고민하고 기도했습니다. 이런 비전과 사명 선언문을 만들어야 하는 가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결론은 세워보자입니다. 잘 되지 않을지 몰라도 계획에만 그칠 지 몰라도 또 많은 교회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어도 해보자 입니다.
함께 목적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교회 비전 : 예수의 길을 함께 걷는 평화의 공동체

사명 선언:
파리중앙교회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고백을 따르는
평화의 공동체입니다.

파리중앙교회는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예배로 바로 서는 교회
-이웃을 몸같이 사랑함으로 참 사랑과  평화를 나누는 교회
-지식을 내세우기 보다 아는 만큼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교회
-재물과 명예와 권력 없이도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보이는 교회
-다름을 인정할 줄 알면서도 거짓과 위선에는 단호한 교회
-평화 없음으로 고통당하는 이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씨앗을 뿌리는 교회
-높고 커다란 것이 아닌 낮아짐과 낮음에 관심하는 교회
-소외되는 이들, 파괴되는 자연에 관심하며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교회
-무엇보다 예수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신앙하고 행하는 교회입니다.

우리는 아직 이런 비전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천로역정의 길을 함께 울며 함께 기뻐하며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새로워짐으로 이 영적 순례의 길을 함께 걸어갈 것입니다.
이 영적 순례는 혼자가 아닌 함께 함으로 더욱 기쁠 수 있습니다.

-------------------------------------------------------

김기석 목사님께서 목회하시는 청파교회의 내용을 참고했습니다.
다른 교회들을 살펴보니 대부분 비슷한 내용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나의 생각과 신학 교회의 참 모습에 대한 고민들이 섞여 있는
것을 참고하여 우리 교회의 비전을 세워보았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교회의 모습, 신앙의 모습은 다음의 성경 구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부터 40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

우리교회의 비전과 사명 선언도 이 성경 구절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 구절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우리가 세워나가야 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구상을 담아 보았습니다.

물론 이 비전과 내용은 변할 수 도 있습니다. 조금씩 변해 가고 더해 갈 것입니다.
그러나 중심만은 변해서는 안되겠지요. 그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내용을 교회 구성원들에게 알렸습니다.
함께 기도하면서 더 구체적으로 세워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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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교회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목회에 대한 생각도 더불어 많이 하게 됩니다. 생각은 자유롭게 하되 정리는 편안하게 하고 싶은데
그것 모두가 잘 되지 않습니다.

교회를 바라보는 마음이 편치 만은 않습니다.
생각과 마음의 길에서는 자유롭게 교회를 이야기하고 생각하는데
현실을 만나는 곳에서는 마음이 무거운 것이 사실입니다.
아마도 먹고 사는 문제가 거기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부자로 살고 싶기도 합니다.
많은 것들을 누리며 살고 싶기도 합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하고 싶은 것도 많습니다. 사고 싶은 것도 많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의 삶에서 그것을 요구하지 못하게 합니다.

커다란 교회 규모있는 교회에 담임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들때도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라면 더 잘 할 수 있을것 같은데....
하긴 그 생각은 이미 한참 전에 하나님께서 무너트려주셨습니다. 감사하게도..

이야기가 엇 나가지만 이 이야기가 꺼내려던 이야기와 별만 다르지는 않을 것같습니다.
교인들에게 함께 하는 성도들에게 '우리 이런 교회가 됩시다'. 라고 말해야 합니다.
'부흥하는 교회가 됩시다'라고  이야기도 해야 합니다. 리더쉽을 다룬 글들에서도 이런 내용을 많이 다룹니다. 그러나 난 교회에서는 리더쉽이라는게 있어서는 안된다고 조심스럽게 생각합니다.
교회의 러더쉽은 그리스도 에수, 하나님이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 다음은 모두 함께 제자된 사람들이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사 혼자 이런 교획가 되어야 합니다. 가로 말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미 이런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성경에서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이 두가지가 가장 큰 계명, 새로운 계명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 교회의 이야기를 함께 만들 이야기를

"사랑받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교회"로 하면 어떨까 생각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 교인들에게 공개되고 함께 다시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규모가 어떻게 되든지 어떤 사람들이 모이던지
사랑받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교회

그렇게 되면 어떤 모양으로 서 있던지 그 자리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고 드러낼 수 있는 공동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런 희망을 이야기해봅니다.

난 우리 교회를 하나님께서 그런 도구로 써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자꾸 드는 비교의 생각과 자람에 대한 욕구, 성장에 대한 잘못된 확신,
프로그램으로 점령된 교회.
그저 사랑하는 마음을 나누고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고 나누는 그런 교회가 되길... 그렇게 조심스럽게 기도하고 소망해 봅니다.

계절을 따라 시냇물이 흐르고 나뭇잎으 흘러나고 하늘이 흐르는 것처럼...
우리의 삶이 그렇게 흘러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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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지금도 여전히 창조과학이라 불리는 일련의 활동이 활발하다.
많은 교회들이 창조과학회를 초청하여 강연을 듣고 하나님의 존재와 창조의 이야기를 확증하려고 한다.
진화론에 대한 반응으로 진화론을 부정하기 위해서 창조론을 이야기한다.
과학교과서에는 창조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지 않는다.
진화에 대한 언급만 있다. 오래전 미국의 한 주에서 창조론도 과학 교과서에 실어야 한다고
소송을 한적이 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패소하였다. 진화론만 교과에서 실어야 한다고...
기독교 국가라 불리는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대통령이 선서할때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하는 나라..미국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특히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창조론이든 진화론이든..그것을 왜 증명해야 하는가?
창조론의 이야기로 하나님을 증명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진화론을 이야기하니 창조론을 이야기하고..그것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과학의 허구를 지적하려 한다.

난 이부분에 대해서 반대한다.
난 진화론을 인정한다.
물론 창조론도 인정한다. 하나님께서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셨다.
그러나 창조진화론도 아니다.
과학도 종교도 여전히 불안전한 상태라고 나는 여긴다.
터지기 일보 직전의 활화산 같은 ....
과학은 끊임없는 가설의 등장과 반복적 실험으로 얻은 결과를 통해 인정하는 정설..
그리고 또 다시 깨어지는 정설은 새로운 가설을 만난다.
토머스 쿤은 이런 과정을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이야기했다.
이전 가설은 새로운 가설과 함께 존재할 수 없다. 패러다임은 변화한다.

부족한 인간의 힘으로 판명하는 내용을 가지고 하나님을 정의하려고 하는 일은 무모한 일이다.
하나님께서 첫찌날은 무엇을 창조하시고 둘째날은 무엇을 창조하셨는가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은 그 내용으로도 모순되어 있는 부분이 있다. 그렇다고 이것이 창조를 부정하는데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창세기 1장의 창조 순서가 무엇이 중요하다 말인가? 이것이다.
이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신앙의 고백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는 것, 그것이 문제인것이다.
이것이 과거 기독교가 세상에 폭력적으로 행한 많은 일들을 촉발시킨 것이다.
그리고 과학을 종교으 영역에서 밀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과학을 옹호하면 무신론자가 되는 것으로 잘못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과학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폭력적 자연 지배를 정당화 하기도 한다.
하나님을 닮은 최고의 창조물이라는 이유로..
그러나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면서 보시기에 좋았던 이들은 모두이다.

종교와 과학 만날 수 없는 원수인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한국 기독 사회는 지나친 이분법에 빠져있다. 그것이 종교를 유지하는 힘인냥 잘 못생각한다
오히려 그것이 종교의 미래를 불안하게 하는 일인 것은 모르고..
하나님을 어느 한계점 안으로 몰아넣으려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이것은 정리되지 않은 나의 생각이다. 더 정리해야 겠지
그러나 창조과학을 이야기하는 많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양쪽의 책을 2권씩만 읽으라..그러면 좀더 생각할 여지를 갖게 될 것이다.
권하기는 도킨스의 책은 읽지 말기...그이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억지를 부리고 있다.
사실 그 모습에서 종교의 모습, 기독교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하나님을 가두지 말았으면 좋겠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이론으로 신학으로 과학으로 하나님을 가두려 한다.
열려계신 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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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병훈이를 통해서 알게된 책. 이번 한국행에서 얻은 귀한 책이다.

더 설명한 것도 없이 사랑이 넘치는 교회
정말 당연한 이야기이고 쉬운 이야기인 것 같지만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다.
줄치면서 읽고 싶은 것을 참으면서 읽었다.
다시 한번 읽으려고 그땐 정리를 하면서 읽으려고..

내가 생각하는 이 아닌 성령이 이끄시는 그런 교회여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솟아난 교회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넘쳐야겠지?

하지만 우리는 많은것을 잃어버렸다.
어쩔수 없다는 말을 앞에 달아 두면서...

그러나 이제라도 다시 털어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항상 걸리는 것이, 어쩔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재정에 대한 문제이다.
교회가 교회로 서기 위해서 재정의 문제는 그냥 넘길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 그 책속의 그 교회는 어느정도 규모를 가진교회였다는 것...

우리는...?

여기서부터 막힌다.

그래도 버릴 수 없는 당위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넘치는 교회"여야 한다는 것이다.
출발점이 거기였으니 종착점도 거기여야겠지..

하나님께서 도우셔야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넘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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