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밀이 수건/ 최승호

 

 

살이 얼마나 질긴지

때밀이수건에 먼저 구멍이 났다.

무명(無明)은 또 얼마나 질긴지

돌비누 같은 경(經)으로 문질러도

무명(無明)에 거품 일지 않는다.

주일(主日)이면

꿍쳐둔 속옷 같은 죄들을 안고

멋진 옷차림으로 간편한 세탁기 같은 교회에

속죄하러 몰려가는 양(羊)들.

세탁비를 받으라, 성직자여

때 밀어 달라고 밀려드는 게으른 양(羊)떼에게

말하라, 너희 때를 이젠 너희가 씻고

속옷도 좀 손수 빨아 입으라고.

제 몸 씻을 새 없는 성자(聖者)들이 불쌍하다.

그들의 때 묻은 성의(聖衣)는 누가 빠는지.

 

죽음이 우리들 때를 밀러 온다.

발빠지는 진흙 수렁 늪에서

해 저무는 줄 모르고 진탕 놀다온 탕아를

씻어 주는 밤의 어머니,

죽음이 눈썹 없이, 아무 말 없이

우리들 알몸을 기다리신다.

때 한 점 없을 때까지

몸이 뭉그러져도

말끔하게 때를 문지르고 또 문지르는 죽음,

죽음은 때를 미워해

청정한 중의 해골도 씻고 또 씻고

샅샅이 씻어 몸을 깨끗이 없애 버린다.

그렇다면 죽음의 눈엔 온몸이 다 때란 말인가?

 

- 시집 <얼음의 자서전> (세계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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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원로 목사의 후회스런 고백

제가 오늘 "원로 목사의 고백" 이라는 제목으로 여러분 앞에 들려드릴 이 이야기는 저 같이 은퇴한 후에 후회하는 목사가 되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제가 드리는 첫 번째 것은 후회하는 목회에 대해서입니다.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이민 목회 30년 후 은퇴하고 보니 한번도 안식년을 가져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결코 잘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안식 기간을 통해 재충전과 새로운 사역에의 활력소를 찾았다면 내 목회는 훨씬 달라졌을 것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너무 많이 외부로 나가지 마십시오. 봄 여름 가을 겨울 절기별로 한번씩 그리고 개인이 쓸 수 있는 휴가 기간을 이용한 부흥회 인도 그 정도여야지 너무 많이 자신의 목양터를 떠나는 것은 삼가시기 바랍니다.

세월을 허송하지 마십시오. 목회 기간 중 무슨 일에 그리 바쁘든지 기도 시간과 성경 연구 시간을 많이 빼앗긴 것을 후회합니다. 기도와 성경 연구를 소홀히 하게 되면 크게 후회하게 됩니다.

구원의 확신 없는 설교를 하지 마십시오. 젊은 시절에 제가 했던 설교, 충분히 기도하며 준비하지 못했던 제 설교를 지금 들어보면 부끄럽기 한이 없습니다. 내 자신이 확신을 갖지 못하는 설교는 교인들을 바로 양육할 수 없습니다.

기도드린 대로 살지 못한 것을 후회합니다. 평소 입버릇처럼 행했던 기도 제목들이 있는데 삶 속에서 이것을 그대로 실천하며 살지 못했던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용서를 철저히 행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합니다. 젊은 시절에 왜 그렇게 교인들을 닥달하고 힘들게 했는지 정말 후회됩니다. 그들을 더 껴안으며 지도했더라면 하는 후회가 어찌나 많은지 모릅니다.

거룩한 일, 덕스러운 일, 나라를 위한 일, 인권을 위한 일 등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신앙인으로서 소극적으로 행했던 바를 크게 후회합니다.

계획과 뜻은 100% 세웠는데 매년 말에 결산해보면 70-80%는 이행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교회가 하니까 나도 의례적으로 교회 목표나 행사 계획을 짜곤 했지만 정작 실천하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다시 목회하게 된다면 할 수 있는 일, 자신 있게 할 일만을 계획하겠습니다.

세례자 명단, 결혼과 장례 집례 그리고 목회일지와 설교철은 꼭 챙기십시오. 오랜 기간 목회하다 보니 저로부터 세례를 받은 이들을 수십 년만에 만나게 됩니다. 저는 기억조차 없지만 그들은 평생 저를 기억하고있다는 사실에 놀라곤 했습니다. 목사의 재산목록이라면 이런 명단입니다. 꼭 챙겨 두시기 바랍니다.

말이 너무 많았다는 점도 후회합니다. 대부분의 목사들처럼 저도 말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목사는 가급적 입을 무겁게 하고 꼭 필요할 때만 입을 여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정적인 목회를 했던 것을 후회합니다. 가급적이면 긍정적인 시각에서 사역을 전개해 가는 모습이 바람직합니다.

눈치 목회, 비위 맞추는 목회를 한 적이 있음을 후회합니다. 교인들의 눈치를 보며 장로 권사의 비위를 맞추려 했었다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눈치를 볼 사안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후배 목사님들. 성경적으로 확실한 일에 대해서는 소신있게 추진해 가십시오.

목회 전담보다는 외부적인 일이 많았었던 것을 후회합니다. 목양지를 돌보는 일이 우선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외부 활동이 많았던 저입니다. 소속 교단을 위한 일 한가지와 교계를 위한 연합사업 한가지 정도로 모두 두 가지 정도면 족합니다. 그 이상은 하지 마십시오.

자기 자랑을 마십시다. 이 또한 교만이었습니다.

둘째로, 꼭 명심해야 할 것 10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목사안수 받을 때의 소명, 그 감격을 꼭 명심하십시오.
목사님의 유언, 간곡한 지도를 명심하십시오.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십자군 같은 사람들을 기억하십시오.
나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 분들을 기억하십시오.
시간약속을 잘 지키는 것은 목회자의 큰 덕목입니다.
어떠한 사람이 전화를 해왔다 할지라도 꼭 회답해 주어야 합니다.
심방에 철저하십시오.
성도들의 비밀을 간직할 것이며 그들과의 상담은 곧 '듣는 섬김'임을 기억하십시오
교인들 전체의 목회자가 되어야지 특정 직분, 연령, 구역을 편애하지 마십시오
생활비는 교회가 주는대로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며 목회비는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접대비를 교회에 청구할 때는 영수증을 꼭 첨부하십시오. 그리고 선교비는 교회예산 전체의 30-40%을 쓸 수 있도록 예산편성을 하십시오.

셋째로 목회의 7가지 "P" 는 다음과 같습니다.

Personage-아무리 교회 성장을 이룬다 해도 '목사관 목회'에서 성공을 이루지 못하면 온전하지 못합니다. 목사 부부 그리고 자녀들 모두에게 인정받는 목사가 되어야 합니다. Partnership-매사에 예수 그리스도와 파트너십을 유지하며 사역해 나가야 합니다.
Preaching-목사는 역시 설교가 강해야 합니다.
Program-사역의 효율성을 위해 프로그램의 동기부여와 진행 관리 등이 병행 되야 합니다. Prayer-기도는 목회의 가장 근간을 이루는 것임을 거듭 강조합니다.
Patient-오래 참음이 있어야 합니다.
Peace-화평을 도모하는 일에 힘쓰십시오. 

원본 링크
http://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30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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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영적 깨달음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 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엡5:14)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느님, 

우리들이 깊은 밤에 빠져 있습니다. 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게 하소서. 간절히 빕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봅니다. 우리가 흑암 중에 헤매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님의 은총과 자비가 필요하다는 것조차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오히려 죄악을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상처를 주고받으며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자화자찬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실상은 산 자들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들이요, 눈 먼 자들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그런 사람이 될 힘이 없습니다. 우리들을 향하여 주님께서 꾸고 계신 꿈과 비전을 알아차릴 감각이 없습니다. 우리는 깊고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를 깨워 주소서. 하느님, 진상과 허상의 차이를 알아볼 수 있게 도우소서. 

우리들의 참 모습을 알아보도록 용기를 주소서.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 알아 볼 지혜를 주소서.

우리가 본래 주님의 자녀들이었음을 다시금 주장하게 하소서. 주님의 모습으로 지음 받은 피조물, 곧 사람이라는 게 우리들 본래의 신분임을 주장하게 하소서. 

우리는 주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았습니다. 속 갚은 데서부터 우리는 변화될 수 있습니다.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오 주님, 우리들이 깨어나,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는 약속들을 믿는 믿음을 얻게 하소서.

잠깨어 일어난 모든 자들에게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빛을 주시겠다고, 우리들의 마음을 주님의 거처로 삼으시겠다고, 주님의 거룩한 영을 선물로 주시어, 우리를 죄악에서 해방하시겠다고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의 영이 우리의 삶 속에 들어오시어, 우리의 마음을 탐욕과 미움 대신 넉넉한 여유와 사랑으로 채우소서.

주님은 우리들에게 경건의 겉모양만이 아니라, 바르게 살고, 순 마음으로 사랑할 힘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로 잠에서 깨어나, 모든 사람들에게 약속하신 주님의 좋은 소식, 참되고 단순한 소식을 깨닫게 하소서.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와 더불어 함께 계신 그리스도의 영을 감지하게 하소서. 마음 깊은 곳에서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노래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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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덜 된 기독교인이라는 말이 마음에 박힙니다. 

2. 순전한 기독교인(Altogether Christian)


"아그립바가 바울더러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행26:28).

생명을 주시는 창조주 하느님,
때로 저는 “거의 됐지만 아직은 덜 된 기독교인(almost Christian))”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정의를 위하여 헌신하며, 정직하게 살려고, 사람을 사랑하며 살려고 힘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시겠지요: 너는 경건의 모양은 갖추었으나
네 생활 속에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의 능력은 없구나.

주님, 주님의 계율에 복종하려 합니다.
남들에게 인내심을 보이고, 친절히 대합니다.
할 수 있는 한 이웃을 돕습니다.

기도합니다. 성경을 읽습니다. 성찬식에 참여합니다. 주님만 생각하는 구별된 시간을 마련합니다.

주님께서 제 생활의 중심이 되어 달라고 기도드릴 때, 저의 그 말은 참으로 진지합니다. 제 마음 깊은 바닥으로부터 주님을 섬기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전히 “거의 다 된 기독교인”처럼 느껴집니다.

주님, 저를 “순전한 기독교인”(altogether a Christian)으로 만들어 주소서. 오, 창조를 새롭게 하시는 주님이시여, 제 가슴속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샘물처럼 넘쳐흐르게 하소서.

제 자신을 사랑하듯 제 이웃을 사랑하게 하소서.
제 마음속에 한 확신을 주소서. 그리스도께서 저를 위하여 돌아가셨으며, 아직도 저를 사랑하고 계심을 믿게 하소서.
오 하느님, 사랑이 저의 믿음의 잣대가 되게 하소서.
주님, 도우소서. 단지 거의 됐지만 아직은 덜 된 기독교인이 아니라, 순전한 기독교인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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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믿음으로 얻는 구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

   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은혜로우신 하느님, 

제가 일생동안 누려온 그 많은 행운들은 모두 주님께서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받아 누릴 만한 일을 아무 것도 하지 못하였음을 압니다. 그 중에서 가중 귀한 행운은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은총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한 선물을 받았으니, 곧 구원입니다.  

바라건대, 단지 주님을 아는 데서 넘어서서,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끈끈한 관계를 맺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께 뿌리를 둔 삶을 살게 하옵소서. 그리하오시면, 제가 일상 속에서 그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의지하니, 제게는 날마다 평화와 힘이 넘칠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 제가 누릴 수 있는 구원을 제공하십니다. 곧 죄책감, 죄에 대한 공포, 죄악의 세력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지금 제 가슴속에는 일체의 습관적이고 고집스런 죄악에서 간절히 벗어나고자 하는 불타는 소망이 있습니다. 제 마음을 씻어주시어, 정결하게 하소서.

제게 필요한 모든 것은 단지 믿음뿐이라는 안일한 생각에 빠지려 할 때, 주님께서 제게 믿음을 주신 목표가 제 가슴과 생활 속에 참된 성결을 회복하고자 함이었음을 상기하게 하소서. 믿음은 언제나 사랑이라는 목표에 이르는 방편입니다. 저로 하여금 결코 믿음이 그 자체로서 목표인양 착각하지 않게 하소서. 주님의 사랑을 의지하고, 신실하게 살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인하여 제가 이루는 모든 선행을 인하여 교만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늘 모든 선의 근원이신 주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제가 온전히 주님을 의지할 때는 늘 제가 주님의 팔에 안기여 안전하다는 것을 압니다. 이 놀라운 복된 소식을 제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할 수 있는 용기를 제게 주옵소서. 그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고 있습니다. 제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선포할 떼, 더러는 등을 돌리겠지만, 저는 주님의 사랑의 승리 안에서 늘 쉼을 누릴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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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 위기에 있는 것은
기독교가 기독교답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종교의 미래가 있을까?
그것은 종교가 종교다울때 나올 수 있는 답일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기독교는 지금 기독교답지 않다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기독교 다울 때 기독교는 기독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욱 안타까운 것은 기독교는 역사를 가진 순간부터
지금까지 기독교다운 적이 없었던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믿습니다.
종교가 미래의 답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모든 것의 답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가장 옳고 바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상도, 어떤 주의도 한쪽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들의 가치를 옹호하기 위해서...
그러나 하나님 나라, 진실된 하나님 나라는 치우침이 없습니다. 진실된 하나님 나라...
그래서 나는 진실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믿음과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가치를 살아감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 수 있다고 여깁니다.
하나님 나라는 감히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겠죠.
주어진 삶으로 드러나게 할 뿐입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여깁니다.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신자유주의도, 이상주의도...어떤 생각도
우리의 절대 미래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스탠리 존슨 선교사님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우리 고유의 전체주의(선교사님은 하나님 나라를 전체주의라 표현합니다. 유일한) 곧 하나님 나라를 놓쳐버렸기 때문에 그러한 공백이 나타난 것이고 우리가 기권한 그 자리에 세속적인 서리 전체주의가 등장한 것이다.(공산주의, 자본주의, 강력한 국가주의 모두를 전체주의라 여깁니다. 오래전 기록된 글인데 정확한 표현인거 같습니다.)"-순례자의 노래 중에서-

저는 그분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이제 우리가 놓쳤던 부분을 되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에 미래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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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을 깨닫는 것이 가장 큰 것을 깨닫는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든다.
계산되는 세상에서 사람의 살이도 계산되는 그런 세상에서
사람이 사람을 그냥 진심으로 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작은 것을 깨닫는 것이 더 큰 행복인 것을...

솔약국집 아들들을 집필한 작가의 세계관과 생각이 너무 좋다.
조정선작가의 말이다.

''솔약국집 남자들''을 집필한 조정선 작가는 표면적인 내용은 장가 못간 아들들을 장가보내는 이야기지만 그 속에서 공동체 사회에 대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조 작가는 ''솔약국집 아들들''은 가족 이기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가족애를 넘어 공동체의 미덕을 다룬 작품이라고 정의했다.

한국을 떠나 와서도 즐겨 보던 프로그램이 오늘 종영했다.
마지막회를 저녁부터 밤까지 몇번이고 다시 본다.

컴퓨터 화면 속으로 나를 빠져들게 했던 드라마...
드라마를 보면서 드라마를 보는게 아니라 내가 그 안에 들어가 있는 듯한 착각을 ....

행복하게 했던 드라마다.
그런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인텐데 너무 기본적인 것들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드라마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엄마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었고
함께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고
나누는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사랑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한다.
조작가는 복실이의 사랑을 '충'이라 표현한다.
결국은 복실이의 '충' 같은 사랑이 이긴다는 것이다.

험한한 세상의 이야기가 넘쳐난다.
어린 아이를 강간하고 그 아이는 평생의 장애를 가지고 살아야하고
사람들은 그 사람을 또 미워하고
정치의 이야기가 세상의 사회 이야기가 경제의 이야기가 힘들게 했었는데...

그래도 행복한 것은 여전히 우리의 삶은 살아지고 우리는 여전히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우리는 여전히 기쁨을 나누면서 몸을 부대고 사랑을 나누며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난 그런 세상을 믿는다..

그 드라마 BGM 중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사랑을 믿어요~~" "나로 인해 행복해질 거에요...."

난 여전히 사랑을 믿는다...

작은 것을 깨닫고 그 깨달음을 살았을때  큰 깨달음이 될텐데..

삶은 계속 큰 깨달음만을 원하는 우를 범한다.

행복ㅎ다. 나로 인해 행복해질 사람들을 기대하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하셨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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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스탠리 존스 선교사님의 자서전을 읽고 있다.
"순례자의 노래"

"인도의 길을 걷는 예수" 이후에 참 마음이 많이 가는 분이다..

그분의 책을 읽다가 문득 한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전문을 옮겨본다.

"인도사람들은 기독교 신앙에 반응 할때 세 단계를 거쳤다. 그 세단계는 다음과 같다.
첫째, 그것은 참이 아니다. 둘째, 그것은 새 것이 아니다. 셋째, 그것은 그대가 아니다.
그들은 첫 번째 태도를 취하지는 못했다. 그들은 두 번째 단계로 이동하여 "그것은 새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생애 대부분을 두 번째 단계의 도전을 받으며 보냈다. 두 번째 단계는 세번째 단계와 맞물려 있었다.
세 번째 단계, 곧, " 그것은 그대가 아니다 "라는 말은 "당신네 그리스도 인들은 그 말씀대로 살아고 있지 않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야기하고 전할 때, 사람들은 그것이 참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서 변론한다.
그리고 많은 종교와 철학이 그런 이야기를 이미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너희의 삶이 그것을 증거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은 참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 우리는 그 삶을 살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최선의 노력과 애씀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런 최선의 애씀이 없기 때문에 그 질문에 대답하기 어렵다.

간디가 스탠리 존스 선교사님에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당신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삶을 산다면
인도인들 모두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당신들은 그리스도를 말하지 말고 사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비난한다.
올해는 특히 다윈 탄생 200주년과 종의 기원 발표 150주년을 맞아 많은 이들이 종교와 과학의 갈등과 대결을 상품화 하려고 한다.
신구교가 모두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한탄한다. 유럽은 종교가 문화이고 상품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오늘 어떤 삶으로 사람들에게 나의 삶을 나타내고 있는가?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그 삶을 내 삶으로 삼고 살아가는가?
여전히 부족한 나의 심성과 마음이 실존적 존재의 부자유함이 여전히 자유하지 못하게 하지만..

오늘 다시 한번 하나님께서 나를 프랑스로 인도하심이 무엇때문인지 깊게 생각하게 한다.

정신과 철학 문화와 예술이 가득한, 스스로가 똑똑하고 논리적이라 여기는 사람들..

하나님은 날마다 깨달음으로 인도해 주실 것이다.
내가 그것을 발견하는 날까지 계속...

속히 발견되길...
속히 살아지길..

그래서 우리의 삶을 통해서 사람들이 "그것이 그대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하나 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참입니다."라고 고백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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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이현주목사님께서 번역하시 헨리나우웬의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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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침묵, 둘 다 안내자가 필요하다.

우리가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건 아닌지,

본인의 감정을 드러내는 데 가장 적절한 단어를 골라 쓰고 있는지,

엉뚱한 상상의 음성을 듣고 있는 건 아닌지, 그걸 어떻게 아는가?

성경구절을 인용하고 침묵 속에서 음성을 듣거나 환상을 보는 사람들은 많지만

하느님께로 가는 길을 발견한 사람은 매우 드물다.

지금 자기가 어떤 경우인지를 누가 판단할 수 있을까?

의 느낌과 통찰이 바른 방향으로 본인을 이끌고 있는지를 누가 결정할 것인가?

하느님은 우리 가슴과 머리보다 크신 분이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느낌과 생각들을 하느님의 뜻으로 삼으려는 유혹에 잘 넘어간다.

 

그러기에 우리의 통제 너머 어두운 세력들로부터 오는 다른 음성들과

하느님의 음성을 분별하는 데 도움을 줄 안내자, 지도자, 조언자가 필요하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모든 것을 망각하고 절망 속에서 떠나버리려는 유혹을 받을 때

우리를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아줄 누군가 있어야 한다.

글을 읽거나 침묵을 할 때 어느 구절을 묵상할 것인지

그리고 침묵이 평안 대신 두려움을 안겨줄 때 어떻게 할 것인지를 일러줄 수 있는 누군가 있어야 한다. (펼쳐서 닿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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